일본군 '위안부' 

일본군에게 피해 입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명칭으로,  ‘자발적’으로 위안을 주었다는 뜻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작은 따옴표 (‘)를 붙입니다. 

‌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들 대부분은 강제성과, 속임으로 잡혀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간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끌려가는 경우가 있었고 희박한 확률로 어렵게 고향에 돌아온다고 해도 당시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것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서 힘들게 생계를 이어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 위안부 설립은 군인들에게 이득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어떠한 이유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인권은 없었습니다. 일본병사의 증언과 공문서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가 직접 관리했다는 것이 드러나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사과나 책임은 아직까지도 지고 있지 않습니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피해자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림 _ 김순덕, 끌려감]

수요시위

매주 수요일 낮 12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목소리를 냅니다.

수요시위. 
올해, 2022년도를 기준으로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수요시위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부터 아주머니, 할아버지, 어린 아이까지 한 데 모입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넘어서 인권과 평화를 외칩니다.

“세상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를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게 합니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고 서로의 아픈 곳을 보듬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겠지요. 할머니들을 위로하러 왔다가 자신이 위로를 받고 돌아간다는 학생의 말처럼 우리의 역사 수업은 어저면 위로와 격려를 반복하며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25년간의 수요일, 연합뉴스 사진 자료]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일본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 이거는 바로 잡아야 한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나오게 되었소.”
-故 김학순 할머니(1924~97)의 증언 중에서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께서는 국내 최초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하셨습니다. 이후 세상과 단절된 채 침묵해야만 했던 피해자들이 점점 세상으로 나오게 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권 문제로서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12월 대만에서 열린 < 제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에서 8월 14일을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로 정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매년 8월 14일이 공식적이고 법적인 국가기념일로 확정되었습니다.

 기림일은 피해를 넘어서서 주체적인 인권운동가로, 평화운동가로, 수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된 피해자들의 그 숭고한 삶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피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피해자들의 메시지를 잊지 않고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경향신문 사진 자료]